2016년 지루한 참호전과 영화적 컷씬에만 치중한 레일슈팅 게임에 질려 있었을 무렵 새롭게 출시된 둠은 시작하자마자 악마들을 패대기 치더니 총으로 머리통을 터트리고 찢어 죽인다음 쓸데없는 서론 따위 집어치우고 바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그토록 원했던 게임을 만났다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게임의 스타일은 클래식 둠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불꽃과 피가 튀기는 전장에서 수많은 악마의 무리들이 몰려오고, 민첩한 몸을 이끌며 숨막힐 정도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악마들을 찢고 죽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잔혹하면서도 화려했다. 둠3 이후 12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둠은 그야말로 찬란하기 그지 없었다. 다시 왕의 군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단점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게임의 전투 양상이 너무 반복적인 문제. 계속 비슷한 지형에 똑 같은 악마들이 순차적으로 나온다는 점. 전체적인 밸런스 문제. 특정 룬 조합이 사기적이고 특정 무기들, 가령 모든 악마들을 한두방에 보내 버리는 더블배럴샷건이 너무 좋다는 점. 이것 때문에 후반부에 게임이 지루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훌륭한 게임이 분명했으며 후속작이 기대되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둠2016(이하 전작) 그 정신을 이어받아 후속작 둠 이터널이(이하 이번작) 출시되었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걸죽한 배경음과 오프닝영상이 나오고 약간 인내와 함께 짧은 시간을 기다리면 오프닝이 끝나고 곧바로 악마를 쳐죽이기 시작한다. 시원시원하게 날렵한 몸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며 처음 주는 무기조차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 전작은 처음주는 무기 권총이 정말 쓸모 없어서 무기 2~3개만 얻어도 권총무기는 업적달성 말고는 꺼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작은 아예 빠졌다. 둠 시리즈의 상징적인 무기가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있으나 밸런스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차라리 이게 더 낫다. 차라리 권총무기가 사용 빈도를 높이도록 컨셉을 재개편 하는 편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구조는 전작의 둠2016 과 같은데 전작의 구조가 워낙 훌륭해서 여기에 큰 변화를 주기 보다는 약간의 요소를 추가하고 좀더 개선하거나 다듬는 것을 선택했다. 전작의 입이 아프도록 칭찬했던 부분들, 여러 무기를 가지고 숨막힐 정도로, 발바닥에 불붙은 것처럼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악마를 잡아 족치는 구조. 전투 양상이 그냥 생각없이 죽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투가 전략적이다.
첫번째로 스윽 둘러보며 전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두번째로 밀려오는 악마들의 규모와 종류를 파악한다.
세번째로 악마들에게 포위되어서 더 이상 유리한 전투가 불리해 졌을 때 탈출 활로를 찾아야 하며
네번째로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다시 전투를 진행하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다시 탈출 활로를 찾는 것이다.
이게 전작 둠(2016)의 주된 전투 양상이었는데 배경은 다를지언정 전장의 구조가 대부분 넓고 중앙이 탁 트인 구조였기에 플레이어에가 주도권을 가져가는게 쉬웠다는 점이 있었기에 그런 전투양상을 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둠 이터널은 전장의 구조가 의미를 갖을 수 있도록 다양해졌다. 위의 설명대로 넓고 중앙이 탁 트인 구조가 나오기도 하고 탁 트이지 않고 구조물이 있는 전장도 있으며 1층 구조의 전장도 있고 3층까지 있는 고층 구조도 있다. 그냥 단순한 구조의 전장은 몇 없다. 더 복잡해진 배배 꼬이고 꼬인 구조와 다양한 경로, 포탈과 점프발판, 철봉(이건 전작에도 있었던 부분이긴 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둠 이터널에는 발목을 잡아 점프를 할 수 없는 진흙장판에 체력을 깎아 먹는 전기장판까지 추가되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전장의 구조를 숙지하며 더불어 전장의 환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는게 더 중요해졌다. 즉 개성 넘치는 레벨디자인들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악마들을 파악하는 것도 전작보다 더 중요해졌다. 전작도 악마들의 개성과 대응 방법이 다양했으나 거기서 더 많은 개성의 악마들이 추가되었다. 초반부터 뉴비들의 숨을 멎게 하는 네발달린 악마 아라크노트론과 공격뿐만 하는게 아닌 뒤에서 쉴드를 쳐주며 지원해주는 카르타스, 순간이동으로 언제 등 뒤에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프로울러 등등 여러 추가된 악마들로 플레이어가 숙지 및 전략을 고려해야할 대상들이 더 늘어났다. 추가된 다양한 공격 패턴을 구사하며 악마들은 무수히 많은 총알과 화구를 쏟아 붓고 플레이어는 그걸 날렵한 몸으로 피해야 한다. 그렇다. 엄폐물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쏘는 참호전 따위보다 이렇게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것이다.
거기에 끝난게 아니라 전체적인 악마들은 약점이라는 개념이 생겨 이 약점을 매맞기 전 강력한 화력을 뿜어내지만 약점을 맞으면 무기력해지기에 이 약점 또한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좀비들도 전작은 그저 체력과 총알을 주는 셔틀 같은 존재 혹은 두주먹 거리밖에 안되는 귀찮은 존재였는데 이번작에는 좀비들 중에 무려 총을쏘고 화염방사까지 쏘는 놈이 몇몇 섞여있어서 총알과 체력을 줄수는 있을지언정 간혹가다 플레이어를 당황하게 하여 어느정도 신경써줘야 한다.
전작은 초반부터 악마의 종류 가짓수가 하나씩 늘어나지만 중반부와 후반부 사이부터 더 이상의 악마 종류 가짓수가 추가되지 않아 전투 양상이 똑같아지는 악순환을 가속화 시키는데 일조하지만 이번작은 추가된 악마의 가짓수가 많아 그러한 일은 없다. 똑 같은 악마를 상대하는게 지루할 때쯤 새로운 악마를 추가시키고, 또 지루할 때쯤 보스전이 시작되어서 보스를 두들겨 패서 죽였더니 다음 전투 때 그녀석이 등장하고, 또 새로운 악마가 추가되고 또 보스전이 시작되고 그놈을 죽이면 다음 전투때 그놈이 등장한다. 이 모든 순간이 똑같은 악마를 상대하며 지루해질 때 라는 절묘한 타이밍에서 바뀌며 놀랍게도 게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일어난다.
간혹 머로더의 디자인이 안좋게 보일 수 있다. 무려 BFG와 크루시블까지 막아내는 만능 방패로 졸렬하게 싸우는데 전투가 늘어지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개별적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이지 전체적인 양상으로 봤을 때는 의미가 크다. 머로더 한마리만 있을때는 그냥 시간만 걸릴 뿐 하찮은 존재이지만 각종 악마들과 단체로 있을 때 이 한놈을 잡으려고 집중하려면 측면으로 다른 악마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위험하니 최대한 거리를 벌리면서 다른 악마들을 모두 죽인 다음에 만만할 때 처리하는, 까다롭지만 어쩔 수 없이 처치를 제일 마지막에 둬야하는 존재이다.
헤비급 악마들을 다 죽이기 전 총알받이, 즉 잔챙이들이 꾸역꾸역 리스폰되니 헤비급 악마들을 우선적으로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동시에 잔챙이들을 통해 자원과 체력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양면성이 존재하기에 고려하고, 또 생각해야할 부분이다.
무기는 대대적인 밸런스 개혁이 이루어졌다. 전작은 전기톱의 화력이 너무 강하여 거대 악마를 한방에 무찔러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기선제압을 했고 근거리는 더블배럴 샷건으로 다 잡아내고 멀리있는 적은 가우스케논으로 다 잡아내니 결국 쓰는 무기가 한정적이고 구사하는 전략도 단순했지만 이번작은 나쁘지 않게 말하면 악마들의 맺집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무기들이 하향평준화 된 느낌이 있다. 더블배럴 샷건의 강력한 화력에 대부분 1~2방에 나가떨어졌던 전작에 비해 이번작은 헤비급 악마가 3번을 정통으로 맞아도 끄떡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처럼 악마들이 생각처럼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기에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화력을 퍼부어야 비로소 죽는데 전작에 비해 소지할 수 있는 총알 탄입대도 박하게 줄었다. 그렇기에 한 무기만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총알이 바닥나 어쩔 수 없이 다른 무기를 교체해 가면서 사용하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양한 무기를 써야 하니 이는 자연스러운 분업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전기톱의 포지션이 달라졌고, 중요도가 강조되었다. 전기톱으로 써는 순간 수많은 총알들이 튀어나와 부족한 자원을 보충해주는데, 즉 강력한 화력보다는 자원을 보충해주는 지원무기 포지션이 되었다. 그렇다. 이번작은 악마를 쓸어버리는데 초점을 맞춘 화력 무기와 총알을 주는 전기톱을 비롯 방어구를 내뱉는 프레임벨치 그리고 적들을 잠시동안 묶어주는 빙결수류탄 같은 지원군 무기의 개념이 확실히 구분되었고 쿨타임 방식이기에 마이크로 컨트롤 보다는 꾸준한 타이밍을 유지하는 매크로 컨트롤에 가깝다.
종합적으로 전투를 평가하면 플레이어는 무수히 빗발치는 악마들의 총알과 화구를 피하며 동시에 정확한 조준으로 악마들의 머리통을 날리는 극악의 컨트롤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쿨타임 보조 무기들의 쿨타임을 제야하고 동시에 남은 총알들을 파악하고 계산해가며 싸워야 하는 복잡하면서도 똑똑하고 빠르고 정신없는 전투를 요구한다. 전작보다 모든 면이 개선이 되었다.
이 전투가 확실하게 체감되는 곳은 전작에서도 큰 재미를 주었고 이번작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투기장 전투다. 스테이지 곳곳마다 이곳이 투기장이다 라고 대놓고 써있을 지경이니, 투기장은 아예 플레이어를 탈출할 수 없는 막다른 공간에 몰아넣고 제대로 밀어붙이는데 위의 길게 열거해 놓은 치열한 전투 과정을 거치고 처음 등장하는 악마들을 다 죽여도 그 다음 단계의 악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해 완전히 끝이 날 때까지 긴장을 놓아서는 안되는 전투를 이어가다가 비로소 악마들을 모두 무찌른 다음 성취감 이라는 전리품을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다고 투기장 외 지역에서 펼쳐지는 전투가 허술한가? 그것도 아니다. 투기장 전투와 투기장 외 전투의 차이는 단계적으로 걸쳐서 적들이 리스폰 되느냐의 차이일 뿐, 맨큐버스나 머로더 같은 헤비급 악마들은 가는 길목이나 골목에서 빈번히 마주치는데 이 악마들이 워낙 한방한방 맞으면 꽤 아프기 때문에 긴장 풀고 가다가 몇대 맞고 빈사상태가 되거나 순식간에 죽을 수 있다.
전투가 없어진 그 이후에 간단한 퍼즐을 풀고 가야할 경로를 찾아 점프 발판을 밟고 벽을 짚고 점프로 뛰어 넘나들거나 혹은 물속을 허우적거려야 하는 플랫포머 부분이 나온다. 치열한 전투를 끝마치고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작도 이런게 있었는데 차이점 이라면 전작은 플랫포머 구간이 개수가 많진 않으나 일단 플랫포머 구간이 시작되면 규모가 어느정도 있고, 길었기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반면 이번작은 플랫포머 구간이 훨씬 많고 좋다고 기억될 만한 컨셉이나 환경도 여러 개 있었으나 규모가 전작의 플랫포머 구간에 비해 살짝 작고 짧게 끊어져서 크게 스테이지단위로 보면 어떠한 컨셉의 플랫포머가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만 짧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짧아서 그냥 치열한 전투 후 잠깐 쉬라는 휴식타임 수준밖에 안되었는데, 차라리 스테이지 마다 정말 길고 규모가 큰 플랫포머 구간 딱 하나씩만 더 추가 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디테일 이야기를 떠나 비록 플랫포머 구간이 제일 긴장감이 덜 하고 손이 덜 타는 부분이지만 계속 잔뜩 팽팽히 당기는 긴장의 끈을 잠시동안 풀어주는 장치로써는 좋았다.
그 밖의 눈에 띄는 거슬리는 부분이라면 정신없는 전투를 하고 난 직후에 잠깐 컷씬이 나오면서 어디 가야할지, 가령 닫혀있던 문이 열리거나 혹은 끊어진 다리가 놓인다던가 등등의 컷씬이 나온다. 5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기에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고 지금이라도 빼 버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법한데, 그냥 빼버리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이번작은 전작의 모든 요소를 가져와서 다듬고 개선하고 발전시켰다. 볼륨도 커졌다. 즉 전작의 탄탄한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의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내던 컨셉이 약해졌고 뜀박질만 정신없이 하는 퀘이크 컨셉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어떠한가, 여전히 둠 슬레이어의 잔혹하면서 마초스러움은 변함이 없고 제일 중요한 전투가 훨씬 재미있어 졌는데.
스토리가 부실하다고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스토리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어차피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데. 제일 중요한 게임 자체의 기본에 충실하면 그만이지.
단 이번작이 전작에 비해 혁신이 없다는 점은 맞다. 전작의 틀에 뭔가가 더 추가된 것은 없다는 것에 이견은 없다. 그러나 이번작은 오로지 전작을 다듬고 고치는 것에 집중했던 게 목표였고 결과적으로는 목표는 성공했다. 새로운 둠 시리즈를 더 완벽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은 그 다음 작에 기대하면 되는 일이다.
길고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2016에 출시한 둠이 클래식 둠의 정신을 훌륭히 이어받는 왕의 귀환이었다면
둠 이터널은 화려한 왕의 승전곡이라 불러도 과함이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음 작품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요약
훌륭한 전작을 개선하고 다듬어 더욱더 훌륭하게 빛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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